무섭지만 무섭지 않다, 티빙 오리지널 <샤먼:귀신전>

저는 <그것이 알고 싶다>를 꽤 즐겨보는 애청자입니다.
인상적인 회차는 수도 없이 많지만,
지금까지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 하나를 꼽아보자면,
주제는 기억나지 않지만 무당이 날카로운 칼 위에서
피 한 방울 내지 않고 걷고, 뛰며 굿하는 모습입니다.
그 이후로 프로그램 시그널 음악과 함께 자동으로 연상되는 건 바로 그 장면이 됐습니다. 그 회차의 주제와 전혀 상관없이 말이죠.

그 이후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일, 인간 세계를 너머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줄곧 관심이 많았습니다.
종교도 같은 이유로, 흥미를 가졌던 것 같습니다.

막연하게나마 신을 믿는 사람이라면 귀신의 존재를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유신론자로서 저는 귀신의 존재를 믿습니다. 비록 유사한 경험을 하거나 만나본 적은커녕 가위에 눌려본 적도 없지만.

어린 시절 공포특급 등과 같은 책을 통해 귀신이야기를 많이 보고, 듣고 자라긴 했지만 나이를 먹어서는 귀신보다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보다 유영철 같은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가 훨씬 무섭습니다. 그러다 드라마 <악귀>를 보며, 어쩌면 그 살인마들은 그런 악귀에 쓰인 인간들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 그렇게 인간이 극악무도할 수 없을 테니까요.

티빙오리지널 콘텐츠 <샤먼:귀신전>은 티저 예고편을 볼 때부터 제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했습니다. 귀신에 쓰인 사람, 즉 빙의된 사람들이 자처해 출연하고, 그들의 치료자로서 기꺼이 출연한 무당들 이야기는 언제 봐도 흥미로웠으니깐요.

사실 공포영화보다 더 리얼한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가볍게 영화보듯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줄기의 메시지는 "귀신을 믿고 안믿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귀신이 인간에게 도움을 주느냐, 주지 않느냐"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귀신은 존재한다는 상정 하에 시작합니다.

크리스챤인 2명의 프리젠테이터, 가톨릭 신자가 다수인 제작진들.
사실 시청자들은 이들의 눈과 동일한 시선에서 무당, 샤머니즘을 봤을 텐데요, 8부작인 이 작품을 다 보고 나면 좀 생각이 달라집니다.

단순이 '미신'이라고 치부하기엔 현대의학으로는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신병에 걸린 이들이 분명히 존재하며, 이들을 치료하는 역할을 하는 무당은 유능하기 때문입니다.

프리젠테이터 중 한 명인 배우 유지태

이 작품은 크게 장례식장에 갔다가 귀신이 붙어 버린 여성의 이야기, 무당인 어머니의 딸로, 그 길을 피하고자 부단히 애썼던 딸이 내림굿 받는 이야기, 연인과 동거하는 남녀 귀신의 이야기, 자신이 제대로 된 신 내림을 받은 줄 알았으니 결국 잡귀에게 잡아 먹혀버린 남자의 이야기 그리고 입양돼 타지에 살던 여성이 고향에 돌아와 무당의 운명을 짊어지게 되는(아직 미방영) 이야기 등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야기의 흥미는 회차가 거듭할수록 크레센도 급으로 커지고 강해집니다. 하지만 단순한 흥밋거리로만 취급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 에피소드에 해당하는 사례자들이 실제로 등장해 인터뷰를 하며, 그에 따른 무당들도 등장합니다. 그들의 표정과 말들을 보면 도무지 '거짓' '연기' '과장'이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정말 진지한 고통이 느껴지기 때문이죠.  

주변에 이 작품을 많이 추천하고 있는데요, 추천할 때 공통적으로 꼽히는 포인트가 있어 몇 개 추려봤습니다. 

point1 무섭지만 무섭지 않다
살면서 귀신에 씌여 빙의된 일반인의 모습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요? 물론, 공포영화에서는 적지 않게 나오는 장면이고, 배우의 연기에 감탄을 하면서 보지만 일반인은 좀 다릅니다. 이 작품에서는 실제 사례자가 등장해 인터뷰 형식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말합니다. 때론 독백식으로, 때론 인터뷰어인 두 배우와 대화하는 식으로 말이죠. 사실 사례자들의 모습이 너무나 평범해 과연 이들이 초자연적인 일을 겪은 사람이 맞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공포영화를 보면 흔히 느껴지는 낯설어서 무서운 감정보다 동정심마저 느껴집니다. 물론, 이들이 말로 설명한 사연을 재연하는 장면은 꽤 무섭습니다. 어떤 검은 형체로 설명되는, 그들의 소름 끼치는 경험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장면이라 보입니다. 

point2 나랑 비슷하네? 
이 작품에 독특한 구성 중 하나는 프리젠테이터가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유지태와 옥자연. 초반에는 이 둘이 대화를 나누는 씬들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실제 사례자들과는 이질감이 느껴찌는 외모와 톤이 자칫 다큐가 아닌 드라마 혹은 영화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어색함이 3~4화 정도가 되면 조금 풀리는데요, 이들이 직접 신병에 걸린 사례자와 무당을 만나 인터뷰하는 것은 물론이고, 굿이 진행되는 현장에서 빙의 돼 목소리나 표정이 갑작스럽게 변하는 사례자의 모습이나 낯설 과 야만적으로 보이는 굿 현장을 지켜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그 현장의 일부로 그 모든 상황을 직면합니다. 크리스천이라고 알려져 있는 두 배우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합니다. 이 마저도 이들이 배우이기에 연기일 수 있다고 반박한다면 딱히 떠오르는 말은 없습니다. 확실한 건, 이들의 표정이 곧 방송을 보고 있는 내 표정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point3 사례의 다채로움 
솔직히 신내림 받으면 모두가 무당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신 중에서도 정식으로 내림굿을 받아 무당이 돼야만 하는, 운명 같은 신의 지목(?)을 받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게 사실이긴 하지만, 가끔 잡귀가 육체에 잘못 들어와 그 육체를 자신의 마음대로 휘두르려는 상황도 발생하기도 합니다. 또는 장례식장과 같은 곳에 갔다가 잘못 귀신이 들린 사람, 본의 아니게 한 침대에서 남녀귀신과 함께 동거를 하게 되는 연인의 이야기, 피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엄마에 이어 무당이 돼야 하는 운명을 맞닥뜨리게 된 여인의 사연, 어린시절 입양 돼 한국과 무관한 나라에 살고 있었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운에 이끌려 한국에 돌아와 무당의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 정말 각양각색의 사연이 얽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누구나 무당이 될 순 없지만, 누구라도 무당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point4 내 명대로 살다 가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출연한 무당들은 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
이는 제가 평소에도 생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귀신이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반성의 낌새라고는 1도 없는 악인들을 보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이승을 떠도는 귀신들은 원혼이 많다고 합니다. 제 명대로 살지 못해 억울한 이유로 죽은 혼들이 떠나지 못하고 머물게 되는 것인데요, 사후 세계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조금 허무맹랑하다 느껴질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유신론자인 저에게는 이 믿음이 현실을 조금 더 열심히, 더 선하게 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조금 반응이 오니, 제작진들의 인터뷰도 꽤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재미있던 포인트가 몇 가지 있었는데, 제작진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였던 것과 촬영을 하면서 귀신의 존재를 '0'이라 여겼던 사람이 '1'로 변화됐다는 얘기와 제작진 사무실 벽 가득 부적을 붙여놓은 것이었습니다. 반응이 좋아 시즌2까지도 벌써 얘기가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제작진 인터뷰를 보면 어떤 기준으로 출연진들을 섭외하고 출연시켰는지에 알 수 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찾아서 확인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