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나면 테니스가 치고 싶다 <브레이크포인트(BreakPoint)>

주말에 내리 본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브레이크포인트>.

현재 시즌 2까지 나온 <브레이크포인트>

테니스를 배운 지 어언 4년이 돼 가지만 여전히 포핸드가 엉성하고, 서브에는 힘이 안 들어갑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테니스 초보입니다.

프로 테니스 선수들의 게임을 정식으로 본 적도 없어서 공식적인 룰도 사실 잘 모릅니다.

<#브레이크포인트>를 보며 정식으로 선수들이 단식 게임 하는 모습을 아주 몰입하여 보게 됐습니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느낀 점을 한 줄로 정리하자면 '테니스는 외로운 스포츠다'라는 것입니다.

 

<브레이크포인트>는 세계에서 열리는 큰 규모의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을 밀착마크 합니다. 세계 최고의 테니스 선수들을 위한 <인간극장>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이들이 경기 시작 전, 경기 중, 그리고 경기가 끝난 후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죠. 

 

테니스 치기 전에도 라파엘 나달, 노박 조코비치 등 선수들의 이름은 알고 있었으니, 이들이 얼마나 대단한 업적을 거둔 선수인지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이미 알려진 이 스타들 보다는, 그들을 상대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줍니다. 어떻게 보면 테니스도 세대교체 중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죠?

2024 롤랑가로스 남자 단식 우승자 '카롤로스 알카라스'

 

2024 롤랑가로스 여자 단식 우승자 '이가 시비옹테크'

올해 치러진 '24 롤랑가로스 단식 우승자 남녀의 얼굴만 봐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테니스의 진짜 매력은 보는 것보다 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치열한 스포츠인 줄은 이 시리즈를 보기 전엔 전혀 몰랐어요. 

테니스는 마냥 신사적인 스포츠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젠틀하고 나이스하게 게임 룰을 지키고 감정 표출은 코트 뒤에서나 하겠지..

고급 스포츠라 여겼던 스포츠 때문인지 코트 위에 있는 선수들도 마냥 '킹스맨'에 나올 것 같은 사람들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테니스는 신사적인 운동이다

그러나 웬걸, 테니스 선수들이 경기 중 격분하는 모습을 보니 살벌, 그 자체입니다. 선수들이 한 경기에 많게는 라켓 9채씩 들고 다니는데 그 이유가 경기 중 볼을 세게 치면 스트링이 끊어질 수 있어 그걸 대비하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이유는 더 있더군요. 선수들 대부분은 마음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답답함을 해소하는 행동으로 라켓을 코트 바닥에 찍고, 네트 기둥에 휘두르더군요. 많지는 않지만 코트 위에서 빌런을 자처하며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맨처럼 상대는 물론 심판, 관중을 자극하는 선수도 있었습니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지만 테니스 단식은1:1로 얼굴을 마주하며 공을 치기 때문에 상대의 작은 말 한마디, 행동에 따라 멘털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걸 이용하여 게임을 운용하는 선수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그렇게 멘탈이 흔들려서 경기 중간중간 소리를 지르고, 자신의 스태프들에게 욕 하고, 라켓을 부수더라도 경기가 끝나면 상대 선수와 네트 중간에서 악수와 인사를 나눈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너무 화가 나면 상대 선수 얼굴은 마주하고 싶지 않을 텐데.

 

테니스는 예민한 운동이다

테니스는 여느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체력을 요합니다. 더불어 경기를 운용하는 지략과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이 중요합니다. 이 모든 것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과의 싸움은 필수적입니다. 홀로 뛰는 마라톤 선수들 마저도 러닝메이트가 있지만 테니스는 없습니다. 경기 전까지 프로페셔널한 스태프가 한 선수를 위해 희생하고 열심히 서포트하지만 경기가 시작되고 난 후, 코트 위에서는 그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합니다. 

벨라루스 출신의 아리나 사발렌카 선수는 공식적으로 자신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녀는 테니스 선수이기 전에 한 인간이자 여성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해 좋지 않은 여론, 아버지의 죽음 등은 코트 위해서 호전적인 플레이를 하는, 전사와 같은 그녀를 흔들기엔 충분했습니다. 시리즈에서는 그런 그녀가 어떻게 자신을 다스리며 성숙한 플레이어가 되는지 성장과정을 보여줍니다. (솔직히 처음 그녀의 목소리와 엄청난 피지컬을 봤을 때 얼마 전 은퇴한 배구선수 김연경이 떠오르는 건... 보신 분들은 공감하실 거예요🤣)

테니스를 한 번이라도 직관한 사람이라면 관중들에게도 적용되는 엄격한 룰에 조금 주눅이 들었을 거예요. 일단 게임이 시작되면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이동할 수 없습니다. 서브 하나가 경기의 당락을 결정짓고, 한 사람의 헛기침 하나에 선수의 멘털을 흔들기 때문입니다. 뜻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아 이런저런 방식으로 화풀이하는 선수들을 보다 보니 "또 시작이네"라며 가볍게 넘어가게 됩니다. 저는 테니스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게 분명합니다 

 

 

테니스는 치열한 운동이다 

어느 분야는 1위의 자리는 외롭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지키려는 자와 그 자리를 빼앗으려는 자'들'의 싸움은 치열합니다. 테니스는 더욱 그렇습니다. 철저하게 '톱시드'( 상위 선수나 팀이 초반에 맞붙지 않게 하도록 조정하다, 또는 그 조정)를 지키는 테니스는 상위 10위권의 선수가 하위권에 속하는 3 자릿수 선수가 1라운드 경기를 치릅니다. 생각보다 많은 톱 선수들이 1라운드에서 맥없이 지는 바람에 일찍이 짐을 싸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시리즈는 현재 미국에서 테니스를 가장 잘 치는 남자 선수인 테일러 프리츠를 조명합니다. 그는 "미국은 1위가 아니면 몰라요. 다른 순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올림픽만 봐도 대부분의 스포츠에서 1위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미국에서 좀처럼 탈환할 수 없는 스포츠가 바로 테니스입니다.(여기에서 저는 살짝 쾌감을 느꼈습니다. 1등 나라가 모든 걸 1등 하리라는 법은 없으니깐요) 실제로 시리즈를 보면서 처음 알게 된 선수는 물론, 처음 보는 국적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아리나 사발렌카 선수의 국적인 벨라루스는 물론,  튀니지의 영웅 온스 자베르, 시에라리온 출신의 이민자 2세인 미국의 프란시스 티아포 등 코트 위에서만큼 그들에게는 그 어떤 배경도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백인들의 전유물이었던 스포츠가 얼마나 다채로워졌는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시리즈 곳곳을 채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테니스가 치고 싶어 집니다

어차피 코트에 나가면 또 뻥뻥 홈런만 쳐대고, 서브 공은 힘 없이 바닥에 곤두박질치겠지만, 테니스가 치고 싶어 집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고, 온몸에 땀 냄새가 진동을 하더라도 언제나처럼 힘 있게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테니스공을 보면 내 심장 박동 같습니다. 마치, 테크노 음악 리듬이 심장소리처럼 느껴진다는 테크노 여전사 이정현처럼 말이죠.